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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리옹, 인쇄와 르네상스가 살아 숨 쉬는 도시

by 여행한줌 2025. 6. 18.

프랑스 동남부의 도시 리옹(Lyon)은 단순한 미식과 유서 깊은 구시가지로만 설명되기엔 부족합니다. 이곳은 중세 말기부터 유럽 문화와 지성의 흐름을 이끈 인쇄 혁명의 중심지이자, 프랑스 르네상스의 태동지로 기능해 온 도시입니다. 오늘날의 리옹은 그 유산을 고스란히 품은 채, 여행자에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프랑스 리옹 푸르비에르 사진

르네상스의 물결을 품은 푸르비에르 언덕 아래

리옹의 역사 중심지인 비외 리옹(Vieux Lyon)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프랑스 르네상스 도시의 진수를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16세기 초, 이곳은 파리보다 앞서 르네상스 양식 건축과 문화가 들어왔고, 이탈리아 피렌체의 영향을 받아 예술과 상업, 학문이 융합된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도시의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르네상스 시대의 흔적이 그대로 살아 있는 회랑(트라불), 안뜰, 아치형 창문이 보존된 저택들이 눈에 띕니다. 특히 가다녜르 거리(Rue Gadagne)에는 16세기 상인의 저택이 현재는 리옹 역사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어, 리옹이 어떻게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갔는지 그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푸르비에르 언덕에서 내려다본 도시 전경은 한편의 역사극처럼 보입니다. 고대 로마 유적, 중세 교회, 르네상스 건물, 그리고 현대 건축이 한 프레임 안에 어우러지는 모습은 리옹이 가진 시간의 복합성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시대적 전환을 체험하고 싶다면, 리옹에서 촬영된 프랑스 영화 The Princess of Montpensier를 추천합니다. 16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리옹의 르네상스 풍경과 역사적 긴장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유럽 인쇄 문화의 숨결을 간직한 도시

르네상스 시대의 리옹을 가장 특별하게 만든 것은 인쇄 산업의 발달이었습니다. 독일의 활판 인쇄술이 유입된 이후, 리옹은 프랑스 내에서 가장 중요한 출판 중심지가 되었고, 유럽 전역에서 지식인과 인쇄업자가 몰려들었습니다.

특히 생 장 구역과 트라불 통로로 연결된 골목들은 과거 인쇄소가 밀집했던 지역으로, 상하층 공간을 연결하는 비밀스러운 통로 구조는 서적 밀수와 종교 개혁 문서 유통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리옹 인쇄 박물관(Musée de l'Imprimerie)은 바로 이 도시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이곳에서는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사용되었던 인쇄 기계와 금속 활자, 종이 견본 등을 직접 볼 수 있으며, 실제 인쇄 시연을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리옹이 출판한 책들은 단순한 종교서나 문학작품이 아니라 과학, 의학, 철학 분야에 걸쳐 있었으며, 이로 인해 도시가 프랑스 계몽주의 이전의 중요한 ‘정보 거점’ 역할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관련해 읽어볼 만한 책으로는, 프랑스 지성사를 다룬 로버트 대로튼(Robert Darnton)의 『금서 유통망(The Forbidden Bestsellers of Pre-Revolutionary France)』을 추천합니다. 이 책은 리옹을 포함한 프랑스 인쇄 도시에서 어떻게 급진적 사상이 퍼져나갔는지를 추적하며, 리옹의 역할을 인상 깊게 조명합니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만나는 지식과 풍경의 교차점

리옹은 전통과 현대가 겹쳐 있는 도시입니다. 푸르비에르 대성당과 벨쿠르 광장의 대비, 르네상스 건물과 현대적인 메트로, 인쇄 박물관과 디지털 미디어 아트 갤러리가 어우러지는 이 도시는 시간이 대화하는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여행자로서 리옹을 걷는다는 것은 단지 과거를 보는 일이 아닙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산업화와 디지털 시대가 중첩된 풍경 속에서, 지식이 어떻게 사람과 도시를 바꿔왔는지를 몸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카페에서 마주하는 대학생들의 토론, 독립 서점에서 발견하는 역사서, 혹은 골목길 책방에서 만나는 고서적들까지—모든 것이 리옹이 여전히 ‘지식과 인쇄의 도시’ 임을 말해줍니다.

음식과 와인의 도시로 알려진 리옹은 분명 미각의 도시이지만, 동시에 사유와 담론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 조용하고 깊은 매력은 책장을 넘기는 손끝처럼, 천천히 다가와 진한 인상을 남깁니다.

활자와 돌벽이 공존하는 도시, 리옹

리옹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과 보이지 않는 역사적 의미가 절묘하게 겹치는 도시입니다.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로 흘러가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는, 인쇄로 불을 지핀 지식의 흐름과 예술의 씨앗이 여전히 살아 숨 쉽니다.

이 도시는 과거를 보존하면서도 현재와 적극적으로 대화합니다. 인쇄기가 돌던 그 거리에서 오늘날에는 아이디어와 기술이 교차하고, 금서가 오가던 통로는 이제 여행자들의 길이 됩니다.

리옹을 걷는다는 것은 하나의 도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유럽 문명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걷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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