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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브뤼헤, 중세를 간직한 운하 도시의 매력

by 여행한줌 2025. 6. 11.

벨기에 북서부에 위치한 브뤼헤(Bruges)는 ‘북쪽의 베네치아’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운하와 중세 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입니다. 그러나 단지 그림 같은 풍경만으로 이 도시가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브뤼헤는 유럽의 산업화와 전쟁 속에서도 놀라울 만큼 원형을 지켜낸 몇 안 되는 중세 도시이며, 그 과정과 배경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브뤼헤가 어떻게 중세유럽의 모습을 오늘날까지 간직할 수 있었는지, 그 역사와 보존의 흐름, 그리고 여행지로서의 매력을 소개합니다.

벨기에 브뤼헤 운하 풍경 사진

중세의 중심지에서 멈춘 시간

브뤼헤는 12세기부터 15세기까지 북유럽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당시 한자동맹의 주요 거점 중 하나로, 영국·프랑스·스칸디나비아와의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운하를 따라 물품이 오갔고, 중앙 광장에는 상인들이 모여들며 도시 전체가 생기 넘치는 경제 중심지로 기능했습니다.

그러나 16세기 후반, 제방의 붕괴와 항로의 변동으로 브뤼헤는 해상 교역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도시는 점차 정체의 길로 들어섭니다. 경제 성장은 멈췄지만, 역설적으로 이 침체가 도시의 ‘보존’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유럽 전역이 산업화로 급격히 변모하던 시기, 브뤼헤는 눈에 띄는 개발 없이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게 된 것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시간이 멈춘 도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만큼 도시 전체가 하나의 유산처럼 느껴지며, 건물 하나하나, 골목 하나하나에 시간의 흔적이 묻어납니다. 단순히 오래된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는 점에서 브뤼헤의 가치는 매우 특별합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보존의 철학

브뤼헤는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그 기준은 단순히 건축물의 오래됨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중세 도시 구조를 거의 완벽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퍼진 골목, 작은 운하를 따라 이어지는 주택들, 고딕 양식의 교회와 시청 건물은 당시의 도시 계획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특히 벨프리 탑(Belfry of Bruges)은 브뤼헤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로, 13세기에 지어진 이 종탑은 도시 자치권과 시민 정신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탑에 오르면 운하와 지붕들로 가득한 도시 전경이 펼쳐지며, 시간이 멈춘 듯한 감동을 줍니다.

보존의 중심에는 ‘무리한 개발보다 도시 고유의 가치’에 주목하는 브뤼헤 사람들의 의지가 있었습니다. 건축물 복원 시에도 원재료와 기법을 가능한 그대로 재현하고, 광고 간판이나 조명에도 조화를 중요시합니다. 이러한 일관된 철학이 오늘의 브뤼헤를 만든 것입니다.

브뤼헤 시청은 관광과 도시 관리 사이의 균형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관광객의 유입이 도시의 고요함을 해치지 않도록 일정 지역은 차량 진입을 제한하고, 시민의 생활권 보호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중세 도시’라는 별명이 결코 과장이 아닌 이유입니다.

여행지로서의 브뤼헤, 풍경 그 이상의 감동

브뤼헤를 여행하는 일은 단지 예쁜 풍경을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처럼 구성되어 있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관광과 삶이 함께 흐르는 이 도시는 마치 역사 속에 직접 들어간 듯한 느낌을 줍니다.

가장 인기 있는 경험은 운하 유람선을 타고 도시를 둘러보는 일입니다. 운하 위에서 바라보는 붉은 지붕, 아치형 돌다리, 회색 벽돌로 지어진 집들은 브뤼헤의 시간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낮에는 햇살이 반사된 물결이 도시를 감싸고, 저녁에는 조명이 반짝이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합니다.

브뤼헤는 또한 초콜릿과 맥주로도 유명합니다. 골목 안 작은 초콜릿 가게들은 각기 다른 맛과 개성을 가진 수제 초콜릿을 선보이며, 브뤼헤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맥주들도 즐길 수 있습니다. 비어 월(Bierwall)이나 브루그스 조트(Brugse Zot) 양조장은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서 성지로 불립니다.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공간은 베긴회(Begijnhof)입니다. 한때 독립적으로 생활하던 여성 공동체가 거주했던 이 공간은 고요하고 정돈된 정원과 하얀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붐비는 관광지에서 벗어나 잠시 여유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며, 브뤼헤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과거가 오늘이 되는 도시

브뤼헤는 그저 ‘보존된 도시’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며 과거를 이어가는 생생한 시간의 흐름이 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브뤼헤는 느림과 깊이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주는 공간입니다. 중세를 단지 박제된 유산이 아닌, 일상 속 풍경으로 느끼고 싶다면 브뤼헤만한 곳은 없습니다.

다음 유럽 여행의 루트를 고민하고 있다면, 브뤼헤를 꼭 고려해 보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걷는 그 골목이, 어쩌면 700년 전 상인이 지나던 길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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